최현지 | Choi Hyunji


2022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 전공
2016 동광고등학교 동양화 전공

작가노트

내 작업의 주제는 이명이다.

삐이이이- 소리가 지직거리며 내 머릿속을 울린다. 이러한 나만의 소음은 침묵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용한 환경일수록 반항이라도 하듯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모두가 의식과 신경을 잠시 꺼놓고 잠드는 조용한 밤, 나는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소음이 가득 찬 방 안에 갇히게 된다. 암흑 속에서 귀에 맴도는 삐이이이- 소리는 내가 마치 고장 난 티비가 된 것 같은 환각을 일으킨다. 나 홀로 켜져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채널이 잘못 맞춰졌거나 고장 난 티비의 모습이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는 이 골치 아픈 소음이 항상 함께한다. 정확히 어디서 만들어졌으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끊임없이 나를 향해 다가오기에 이명이란 내게 막아낼 수 없는 큰 파도 같은 존재이다.

이와 같은 나의 경험과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작품에 파도와 화이트노이즈 효과를 사용한 점을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 내가 겪고 있는 경험을 주제로 작업했기 때문에 작품에 사용된 이미지 또한 내가 직접 촬영을 했거나 나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을 사용했다. <첫인사>, <첫 만남>, 는 아버지가 나의 어린 시절을 녹화해놓은 영상 일부분의 캡처본을 사용한 작품이다. <끝없이 밀려오는>과 <내면>은 제주도 바다를 직접 촬영한 사진을 사용한 작품이며 <@Fracghiolie>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렸던 사진을 사용하여 작업하였다.


<첫인사>
: 아버지가 나를 위해 기록한 영상의 첫 장면이다. 때는 1996년 9월 21일, 내가 태어난 바로 다음 날이다. 갓난아이였던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유리창 너머로 간호사의 품에 안겨 가족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다.

<첫 만남>
: <첫인사>의 바로 다음 장면, 갓 태어난 나를 보러 온 가족들의 모습이다. 나의 탄생을 축복하고 축하해주었고 모두의 행복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른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었으며 작품 속 중심에 있는 남자아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친오빠)는 믿기지 않는 듯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D+365>
: 아버지의 영상에 담겨있는 나의 첫 생일날 모습이다. 사방에서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어서 순간적으로 뽀얗게 색감이 빠지며 영상의 화질이 일그러진 장면을 잡아내어 그대로 작업에 담았다. ‘저 날을 함께했던 모두의 기억 속 이미지도 저렇게 흐릿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 매일 밤, 깜깜하고 조용한 방 안이지만 내게는 끝없는 소음의 파도 속에 빠져있는 순간을 표현해보았다. 주변 환경에 따라 파도의 크기는 바뀔 수 있지만, 끝이란 없다. 끝없이 밀려오며 나는 한없이 빠져든다.

<내면>
: 끝없는 소음이 파도치는 내 안에 들어와 헤엄치는 외부인들. 그들이 초대를 받은 건지 난감한 불청객인지는 알 수 없다. 별안간 그들은 내 안에 들어와 즐기고 있고, 나는 멀리서 바라본다.

<@Fracghiolie>
: 이명이 내 모든 일상에 함께 한다는 점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을 반복하던 중 핸드폰에 켜져 있는 인스타그램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일거수일투족을 업로드하는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갔을 때마다 실제로 기록했던 내 인스타그램의 게시물들을 활용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