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주 | Yoon Pilljoo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작가노트

From a far. 머얼리서.

Afar는 멀리서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고요한 상태를 상상을 하며 그린 작업이다. ‘멀리서 바라봄’은 먼 곳을 응시하는 태도로 삶과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에 평안함을 들이고자 함에 대한 은유이다. 덩그러니 떠 있는 타원형과 낮게 솟은 형태는 강물이 될 수도, 대지가 될 수도 있는 드넓은 공간과 그 너머로 보이는 언덕을 추상적으로 간추린 형상이다. 자연을 바라볼 때처럼 차분해지고 정화된 마음은 단순한 형상과 수평선으로 형식화되고 고운 색채로 표현 되기도 한다. 묘사 없이 반복되는 행위에 집중하는 본인의 그리기 작업에는 ‘수행성’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면적을 다 채울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이 행위는 점차 행동을 의식하지 않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고 현재의 감정이나 의지 같은 의식의 고리가 끊어지며 마치 무의식과 같은 상태에 이른다. 이때 현실에 얽매여있던 생각이나 문제, 잡념들이 멀어져 가고 희미해지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며, 화면은 이 같은 경험과 심리가 내재된 공간이 된다. 불순물이 걷히고 고요해진 마음 은 비어있는 그대로 두어도 좋을 것이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울 수도 있다.


P.
나는 도처에서 발견한 얼룩을 시각적, 심리적 대상으로 바라본다. 화려함에 가려져 있던 무용하고 하찮은 것들을 작가의 시선으로 조명하여 얼룩의 추상적인 형상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찮은 물질이고 단일한 형태이지만 얼룩의 생성부터 현재까지 드러나 있는 시간의 표정과 거기에 이입된 본인의 감정을 인내를 요구하는 행위에 실어서 표현하고자 했다. 샤프나 연필을 가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반복해서 선을 그으며 묘사하는 구조는 옛날 흑백 텔레비전의 주사선 또는 실을 수직으로 엮어서 하나의 형태로 완성하는 직조기법을 연상 시킨다. 무수한 선을 쌓는 긴 시간은 한 자리에서 시간을 이겨내는 작가라는 본인의 위치 사이에 연대감이 형성되는 것을 느끼며 얼룩이라는 물질과 더불어 의미적으로 겹쳐있는 나 자신에게도 몰입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그리기와 반복적인 행위에 더 빠져들게 된다.
구체적인 대상이지만 비현실적인 형상은 느낌, 감각만 있는 추상화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닌 철저하게 현실에 발 디딘 추상화를 가능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