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희 | Bae sanghee
세종대학교 회화과 (서양화) 졸업
작가노트
<작가소개>
기존에 짧은 선을 하나하나 미로처럼 이어나가는 표현 방법은 어렸을 적 실루엣이나, 기하학적인 선으로 장소를 기억하는 습관에서 시작한다. 선 하나하나는 1분, 1초의 순간들을 상징하며 지나친 시간은 있어도 의미 없는 시간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여러 색들의 선들이 모여 조화로움을 이루게끔 표현하여 과거의 시간들이 사라진 것이 아닌 현재를 이루는 가치 있는 결과물이란 것을 이야기하며 작업하고 있다. 이것을 ‘시간’ 이란 무형의 것에 ‘수를 놓다’ 라는 행위의 동사를 붙여 표현하고 있다.
<작가노트>
코로나 19 펜데믹이 준 갑작스런 변화 어제까지만 해도 '내 것'이었던 평범한 일상이 증발해버렸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을 순식간에 형체 없는 무언가에 빼앗긴 당황스러움, 불안과 억울함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란 뜻의 일상은 코로나 시대 전에는 당연한 것이었고, 때론 반복이란 말 속에 부정적이고 의미 없는 뜻으로 비추어졌다. 하지만 그 일상을 되찾기 위해 지금은 전세계의 사람들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익숙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거만함 아니었을까.
이렇게 당연함 속에 특별한 것들은 우리의 삶 속에는 더 많다. 마치 걷고 말하는 것이 다 큰 성인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자라는 어린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배우며 소통하기 시작하는 작은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한사람의 삶을 만들듯이, 각자가 주어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 나갈 때 그 시간들이 축적되어 가치 있는 시간으로 바뀌어 가듯이 말이다.
작업은 그런 시간의 축적을 담아내고 있다. 결과에만 치우친 모습이 아닌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한 형태란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2020년 작품부터는 작업을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끌고 가기 위해 아이를 등장시킨다. 자의식이 있고 삶의 방향이 어느정도 정해진 어른보다는 온전한 자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삶의 시작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속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주제와 부합 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표정이 가려지는 각도나 뒷모습으로 그려진다. 인체 중 사람이 가장 보지 못하는 부분이 뒷모습이다. 내 것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몸뚱이 조차 생전에 10번도 보기 힘든 부분이다. 이것은 앞 모습만을 기억하는 자신, 보여지는 것들 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인간의 속성을 이야기 한다. 특히나 SNS로 개인의 이야기를 제약없이 보여 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행복한 혹은 행복하게 보여지는 모습만 부각된다. 하지만 작업에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은 것들, 볼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바라봐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있다. 누군가의 진정한 면을 보려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다. 표정이나 말로 하는 직접적인 소통 대신 본인도 모르는 뒷모습에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고 그것이 때론 그 삶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자신조차 바라봐 주지않는 뒷모습을 누군가가 바라봐주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 역할을 나의 작업이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지나간, 보지못한 시간들이 쌓여서 만든 형태 없는 무언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아름다운 색을 이루는 그림과 같이 놓쳐버린 것과 잊어버린 것들, 그것조차도 나를 이루는 구성원임을, 어디서 피었다 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 존재했고 존재하는 일분 일초의 짧은 순간들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기존에 짧은 선을 하나하나 미로처럼 이어나가는 표현 방법은 어렸을 적 실루엣이나, 기하학적인 선으로 장소를 기억하는 습관에서 시작한다. 선 하나하나는 1분, 1초의 순간들을 상징하며 지나친 시간은 있어도 의미 없는 시간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여러 색들의 선들이 모여 조화로움을 이루게끔 표현하여 과거의 시간들이 사라진 것이 아닌 현재를 이루는 가치 있는 결과물이란 것을 이야기하며 작업하고 있다. 이것을 ‘시간’ 이란 무형의 것에 ‘수를 놓다’ 라는 행위의 동사를 붙여 표현하고 있다.
<작가노트>
코로나 19 펜데믹이 준 갑작스런 변화 어제까지만 해도 '내 것'이었던 평범한 일상이 증발해버렸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을 순식간에 형체 없는 무언가에 빼앗긴 당황스러움, 불안과 억울함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란 뜻의 일상은 코로나 시대 전에는 당연한 것이었고, 때론 반복이란 말 속에 부정적이고 의미 없는 뜻으로 비추어졌다. 하지만 그 일상을 되찾기 위해 지금은 전세계의 사람들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익숙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거만함 아니었을까.
이렇게 당연함 속에 특별한 것들은 우리의 삶 속에는 더 많다. 마치 걷고 말하는 것이 다 큰 성인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자라는 어린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을 배우며 소통하기 시작하는 작은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한사람의 삶을 만들듯이, 각자가 주어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 나갈 때 그 시간들이 축적되어 가치 있는 시간으로 바뀌어 가듯이 말이다.
작업은 그런 시간의 축적을 담아내고 있다. 결과에만 치우친 모습이 아닌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한 형태란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2020년 작품부터는 작업을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끌고 가기 위해 아이를 등장시킨다. 자의식이 있고 삶의 방향이 어느정도 정해진 어른보다는 온전한 자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삶의 시작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속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주제와 부합 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표정이 가려지는 각도나 뒷모습으로 그려진다. 인체 중 사람이 가장 보지 못하는 부분이 뒷모습이다. 내 것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몸뚱이 조차 생전에 10번도 보기 힘든 부분이다. 이것은 앞 모습만을 기억하는 자신, 보여지는 것들 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인간의 속성을 이야기 한다. 특히나 SNS로 개인의 이야기를 제약없이 보여 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행복한 혹은 행복하게 보여지는 모습만 부각된다. 하지만 작업에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은 것들, 볼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바라봐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있다. 누군가의 진정한 면을 보려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다. 표정이나 말로 하는 직접적인 소통 대신 본인도 모르는 뒷모습에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고 그것이 때론 그 삶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자신조차 바라봐 주지않는 뒷모습을 누군가가 바라봐주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 역할을 나의 작업이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지나간, 보지못한 시간들이 쌓여서 만든 형태 없는 무언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아름다운 색을 이루는 그림과 같이 놓쳐버린 것과 잊어버린 것들, 그것조차도 나를 이루는 구성원임을, 어디서 피었다 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 존재했고 존재하는 일분 일초의 짧은 순간들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